· 참여작가
강승탁, 김령문×백승현
라일라 카심(Laila Cassim and Shibuya Font)
박찬별, 원우리
· 예술감독
엄정순 (작가, 「우리들의 눈」 디렉터)
· 주최/주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모두미술공간
· 전시기획
디자인60(대표 손진우)
· 총괄 큐레이터
김정민
· 관람시간
11:00AM~06:00PM / 월요일, 1월1일, 설연휴 휴관
<전시서문>
본 전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시각예술 전문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마련한 '모두미술공간'의 개관전입니다.
장애예술과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신진 장애예술가 발굴을 목표로 조성된 본 공간의 첫 번째 전시를 개최하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전시에서는 6명의 작가를 소개합니다.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네 명의 작가와 두 명의 비장애 작가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청각장애 무용수의 '호흡 작곡'을 연출로 이끌어 낸 원우리 작곡가의 영상 작업과 김령문×백승현 부부 작가가 팀으로 구성하여 준비한 참여형 설치 작업은 하나의 감각이 변환되며 다른 관점으로 표현되는 '감각의 차이'를 주제로 한 작품들입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장애인 작가와 예술 커뮤니티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입니다. 시각장애라는 어려움을 작품의 개성으로 전환하여 표출하는 박찬별 작가와 커뮤니티 '누구나'를 통해 삶의 방향을 변환한 강승탁 작가를 소개합니다. 또한 동경의 도심 시부야에서 장애예술인과 지역사회를 성공적으로 연결한 커뮤니티 해외사례로 라일라 카심 디자인 디렉터의 '시부야폰트'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전시 《감각한 차이》는 작가가 가진 장애보다는 각 작가들의 창의적 세계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장애로 인해 신체 기능 일부에 다소 부족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여는 없는 것을 뜻함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신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차이를 창조하는 주체적 과정에 이르게 합니다. 그들의 작품은 장애를 크리에이티브한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본 전시가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예술인의 탄생입니다. 배리어프리와 포용적 전시를 구현하려는 미술계의 여러 노력 안에서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굴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미술 관련 커뮤니티와의 연계 속에서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들의 활동을 위한 지속가능성을 찾아보고 미래의 새로운 장애예술인이 탄생하는데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예술은 장애를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장애라고 하는 너무나 무거운 이름에 가려져 있던 작가들의 창조적 차이와 그 미감으로 구현된 예술세계를 체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엄정순
<어떤 차이>
이번 전시 《감각한 차이》는 컬러가 다른 두 개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미니멀한 톤의 첫 번째 전시실은 국내 미술 현장에서 꾸준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작업해 온 작가들이 바라본 ‘감각에 대한 관점’을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고, 두 번째 전시실로 들어서면 저채도 핑크 배경에서 장애인의 미술활동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신진 작가들이 ‘감각한 대상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공간을 구성해 보았다.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기 위해 일반 전시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완만한 곡면도 많을뿐더러, 굳이 이렇게 색감의 차이를 더해 전시 공간을 구분해 본 이유는 이번에 개관하는 ‘모두미술공간’의 특성이 첫걸음부터 일반적인 미술 공간과는 ‘차이’가 존재하도록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의 전시공간에서는 있을 수 없고 어쩌면 있어서도 안 되는 ‘장애예술’이라는 조건이 그러하다. 만일 일반 공간에서의 전시가 이런 조건을 전제한다면 그 순간부터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본의 아닌 ‘분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처음 이 전시를 기획할 때부터 ‘장애예술’이라는 단어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런 자가 장애예술 전시의 큐레이팅을 시도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큰 모험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무모한 도전이 이른바 장애예술과 비장애예술 간에 발현될 수 있는 ‘생각의 차이’,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위험이 있는 ‘현실적 차별’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모순된 바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게슈탈트 심리 상담을 진행하던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게슈탈트란 ‘전체의 모양’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로 게슈탈트 심리 치료에서는 내담자 스스로 내면의 감각과 감정, 표현들 사이의 모순을 인지하도록 하여 자신의 전체적인 형태를 회복하고 존재를 알아차리도록 돕는다. 이는 ‘차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며 그 또한 전체 중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장애예술’이라는 단어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지표인 동시에 우리라는 전체의 모양 속에서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내는, 불편하다고 외면하는 순간 잊힐지도 모르는 하나의 중요한 퍼즐 조각은 아닐까 싶다. 마치 존재의 증명을 위한 부재처럼, 기의를 품은 기표처럼, 어쩌면 예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이 에너지가 되어 힘을 발휘하고 가치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얹어볼 수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 어차피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이 신생 공간에 발을 딛은 여섯 명의 작가들에게 집중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내가 생각한 차이를 내려놓고 그들이 감각한 차이를 바라보는 것이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일테니까.
■ 김정민 (총괄 큐레이터)

원우리 / 96 BPM / 단채널 영상 고정매체, 흑백, 2채널 사운드, 빔프로젝터 벽면 투사, 00:07:27 / 2024 스틸컷
출연 : 고아라
안무 : 고아라_원우리
연출 : 원우리_고아라
무대감독 : 현진식
조명 : 박주원
촬영 : 현진식_임상일_민다홍
사운드 디자인 : 현진식
작곡가이자 사운드 아티스트인 원우리의 영상작품 「96 BPM」은 그가 보청기 사용자인 무용수 고아라와 함께 2년간의 협업을 통해 창작한 작곡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작곡의 과정과 결과를 극도로 추상화하면 그 본질은 긴장과 이완이며 이는 결국 들숨과 날숨이라는 관계를 통해 호흡으로 지속된다고 말한다. 무용가의 몸짓을 통해 긴장과 이완이 담긴 음악적 대화를 7분 남짓의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김령문 / Circle Circle on a Hill / 관객참여 즉흥 사운드퍼포먼스/설치, 석고 세라믹 오브제, 자연물 / 2015 / 스틸컷

백승현 / 앞으로 던지기2 / 단채널 영상/ 00:04:15 / 2020
백승현 / 무제 Untitled / 세라믹 오브제 / 가변설치 / 2020
김령문, 백승현 부부 작가의 코너 「언덕 위의 파도」는 서로 다른 주제로 작업해 온 두 작가가 낯선 세계와 마주할 때 깨어지는 감각의 경험과 그로 인해 확장되는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설치와 영상작품으로 담아낸다. 관객 참여형 작품인 김령문의 작업은 언덕 위에서 석고로 제작된 '곱고 소중한' 구를 굴러 떨어뜨려 깨뜨리는 대형 설치작품으로 깨어지는 순간에 다중감각을 환기시킨다. 백승현의 앞으로 던지기 작업은 독일 유학 중 빵집에서 겪은 밀가루 반죽의 노동 과정을 흙덩어리로 치환, 작가로서의 정체된 상황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통해 실존적 감각으로 풀어낸다. 던지고 깨어지는 자극을 통해 확장되는 감각을 각자의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박찬별 / 나, 그리고 백 개의 망원경 / 캔버스에 혼합재료 가변설치, 18×14cm×100 / 2018~24
제2전시실은 새로운 장애예술 작가들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다양성 및 장애예술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작가와 해외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장애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한 배경과 과정을 톺아보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좁은 시야를 가진 박찬별 작가는 아트랩 '우리들의 눈'을 통해 어릴 때부터 미술 전문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비장애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좁은 시야를 자신만의 특화된 감각으로 활용한 100여 점의 '0호 캔버스' 작품 「나, 그리고 백 개의 망원경」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선보인다.

강승탁 / 무지개 늑대 /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 73×53cm / 2021
서귀포의 미술 커뮤니티 '사단법인 누구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강승탁은 호랑이, 늑대 같은 맹수를 화려한 색감으로 즐겨 그리는 발달장애 작가이다. 「무지개 늑대」같은 강한 존재의 힘을 빌려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이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작가는, 어느덧 이를 통해 껍질을 벗고 작업에 몰두한다. "그림을 그리는 즉시 행복해진다"라고 말하는 그는 멘토링과 개인전 등 커뮤니티의 지원을 통해 예술적 역량을 키워가며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회화 작품과 더불어 아카이브 영상을 소개, 그의 내면세계를 심도 있게 관찰해본다.

라일라 / 카심 시부야 폰트 / 동경 전시 설치컷 / 2024
동경 시내 교통의 요지인 시부야에서 장애 커뮤니티 「시부야폰트」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디렉터 라일라 카심은 장애예술교육 전문가인 영국인 어머니 줄리아 카심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활동해왔다. 지역 미술 워크숍을 통해 시작된 장애인들과의 연대를 기관과 일반인까지 연결한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스스로도 휠체어 이용자인 그는, 커뮤니티가 겪는 고립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디자인 스쿨과의 연계 프로세스를 통해 오픈소스를 개발, 판매까지 이어왔고 각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였다. 장애인들의 스케치를 폰트와 패턴으로 생산해 내고 있으며 유니클로, 구글폰트 등 세계적 브랜드와 협업하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어쩌면 장애예술 씬에서 자주 보던 작가들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도 잠실창작센터 등을 중심으로 장애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가 조성되었으며, 특히 회화 분야는 발달장애 작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연과 전시의 장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개관전임에도 불구하고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여 전시를 구성한 데에는 모두미술공간이라는 장소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장애예술인들을 위해서 이제 막 문을 여는 공간이기에 더 많은 가능성과 그들의 행보를 두루 살펴보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개관을 빌어 떠들썩한 잔치를 열기보다는 이들의 작품과 삶을 좀 더 차분하게,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였다. 본 전시 《감각한 차이》를 계기로 작가들이 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작가로서 날개를 활짝 펴주길 희망한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AI를 활용한 테크환경으로 관객들이 전시를 경험하며 불편하지 않도록 모두를 위해 높은 관람 접근성을 제공하도록 배려하였다. 전시장에서의 기본적인 작품해설은 물론, 전시 환경과 관람 방법까지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폭넓게 제공받을 수 있어, 무장애(Barrier-free)를 넘어 포괄적(inclusive) 전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를 관객이 편안하게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접근성 매니저가 전시장을 관리하며 쉬운 말 해설, 시각장애인 사전 관람 등의 환경을 조성, 장애예술 씬에서의 예술적 의미와 기술적 환경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모두미술공간의 개관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국 장애예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라운드테이블, 참여 작가들과 직접 대화하는 아티스트 토크 등의 연계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마련되었다.